lightning could strike

“But love is passion, obsession, someone you can’t live without. I say fall head over heels… Find someone you can love like crazy and who loves you the same way back. And how do you find him? Forget your head and listen to your heart… To make the journey and not to fall deeply in love.. well, you haven’t lived the life at all. But you have to try because if you haven’t tried, you haven’t lived.”

“Ok, give it to me again but the short version this time.”

“Stay open, who knows, lightning could strike.”

-Meet Joe Black

그리움…그리고 기억

I miss my friend a lot… 슬픔을 간직할려는게 아닌데, 생각하면 목부터 메어

여기 있는한, 그리움은 어쩔 수 없나봐

지금 내 모습에 실망할까봐 괜히 미안해. 네 몫까지 한다고 다짐했는데

너 때문에 다시 일어나, 다시 힘내 항상.

네 몫까지 할게. 지켜봐줘. 너무 보고싶어

내 안에 너의 흔적들… you’ve made me a better per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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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본 성현이

전철역 쪽으로 성현이와 함께 걸아가고 있는데 우리 쪽으로 술이 많이 취하신 할아버지께서 걸어오셨다. 비툴거리는 할아버지가 지나가시도록 우린 한쪽으로 피했는데, 할아버지께서 우리를 지나고 몇 걸음 안가셔서 차가운 길바닥에 주저앉으셨다. 주위 사람들은 쳐다보고 있었지만 성현이는 재빨리 할아버지께 가서 일으키며 “할아버지 괜찮으세요?”라고 물었다. 할아버지를 부축이며 옆에 있는 식당으로 데려가 의자에 할아버지를 앉혔다. 그리고 성현이는 “할아버지, 집 어디세요?”라고 물으며 할아버지가 괜찮으실 때까지 잠시 옆에 있다가 다시 식당을 나왔다.

동해는 새벽바람 탓인지 생각보다 추웠다. 찬영이, 성현이 둘다 앏게 입고 왔다 (찬영인 슬리퍼 신고 오고!!), 무슨 젊음을 자랑하는것도 아니고. 바닷가는 특별히 추웠다. 그런데 성현이는 자기 윗옷을 찬영이에게 줬다. 자기 괜찮다고 찬영이 추우니깐 입으라고 했다. 둘다 그 여행 후 감기 걸렸지만, 성현이는 자기 보다 남을 생각해주는 사람이였다.

내가 2학년1학기 통계로 어려워 할때 내가 부탁도 하지 않았지만 성현이는 자기 통계를 설명하는 고등학교 교과서를 내게 빌려줬다. 그리고 자기 대학 원서에서 나에게 해당하는 부분을 복사해서 나에게 줬다. 복사 할때 옆에 있었는데, 내가 괜찮다고 해도 자기 돈으로 복사해주고 복사가 삐툴어졌다고 다시 이쁘게 해서 나한테 준 기억이 난다.

성현이는 눈물이 나지 않는게 자기의 가장 큰 콤플렉스라고 나에게 말해준 적이 있다. 그래서 성현이를 안 동안, 난 성현이의 눈물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성현이가 울먹인적은 한 번 기억한다. 문자를 통해 성현이가 지금 기분이 좋지 않다는걸 알아차리고 난 성현이한테 바로 전화했다. 그러자 처음 들어보는 흔들리고 울먹거리는 성현이의 목소리… 깜짝 놀라 무슨 일이냐고 물었더니, 어제 밤 어머니가 아무 연락 없이 기도원에 들어가셨다고 말했다. 그런데 어머니 핸드폰이 꺼져있어 연락도 안되서 잠을 자지 못하고 계속 어머니를 찾아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봐 걱정하고 놀랐다는 성현이의 말. 이제 괜찮다고 하는데, 성현이는 많이 놀랐나보다. 밤새 어머니를 찾아 돌아다니던 심정을 생각해보면… 나에게 지금 당장 엄마를 껴안아 드리라고 했다, 내가 방금 껴안았다고 했더니, 그래도 또 껴안으라고 했다. 막내였어도 듬직한 아들이었고, 가족을 엄청 사랑하는 아들이였다.

나는 성현이에게 늘 늦게 일어난다고 잔소리했다, 나도 사실 할 말은 없었지만. 지난 학기 그 이유 중 몇 가지를 알게 되었다. 누나의 일이 가끔 새벽에 끝나고 누나가 밤길이 무서울 때 자기에게 전화해서 깨우면 누나를 데리러 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누나 얘기 할 때 항상 웃으면서 얘기 했는데. . 그리고 성현이는 새벽기도를 드리는 사람이었다. 전도여행 준비 때는 물론, 그리고 특별히 친구를 위해서 기도드렸고, 힘들어하는 친구가 자기와 함께 새벽기도에 나온다고 엄청 좋아했다. 그래서 많은 경우 늦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 . 그런 아이였다.

성현이는 세브란스에서 어린이 예배 봉사했다. 아이들이 예배 시간에 집중 안한다고 말하며 자꾸 자기에게 스티커 사달라고 졸은다고 말했다. 그 아이들에게 줄 스티커를 고르면서 말이다. 성현이는 자기는 카리스마가 없는 선생님이라고 고민했다. 영어예배 반 맡은 아이들이 외국 선생님께서 말씀 하실때 잘 듣고 따르고, 놀 때는 재밌게 논다고, 그 선생님을 부러워했다. 나에게, “난 어떻게 하면 그 선생님처럼 되지?”라고 물었다. “넌 나이가 어려보여서 그런가?” 나도 잘 몰랐다. 자기 아이들이 빨리 집에 보내달라고 말한다며 어떻게 재밌게 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자기가 영어하면 아이들이 자기한테 왜 한국 사람이 영어 쓰냐고 영어 쓰지 말라고 한다고 고민하고, 자기가 혼내면 아이들이 잘 삐친다고 고민했다. 그 얘길 하고 얼마 후 어떻게 되가냐고 묻자, 성현이는 자긴 이대로가 좋다고 했다. 아이들한테 친구처럼 다가갈 수 있는게 더 좋다고 하고, 자기는 그냥 아이들을 안아주는 선생님이 될거라고 했다. 그 아이들. . . 한테 꼭 말해주고 싶은데, 성현 Luke 선생님이 너희들을 엄청 아끼셨고 사랑하셨다고. 그 아이들 나도 안아주고 싶다. 성현이는 정말 아이들을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나에게 자랑스럽게 아프리카에 후원하는 아이 사진을 보여줬고, 영어예배반 아이들 얘기도 많이 해주고, 병원에 있는 아이들 그 봉사활동 가기 싫다고 말해 놓고선 그래도 가면 너무 좋다고 말했던 아이다.

성현이는 항상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UD 받으면서 성적이 너무 떨어졌다고 오기를 갖고 2학년1학기때 공부했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찬영이 옆에서 공부해서 그런가? 집중할땐 열심히 했다. 찬영이랑 나랑 놀자고 꼬셔도, 공부 해야할 땐 정말 끝까지 우리의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 학기 끝나고 그 여름, 성현이한테서 문자가 왔다: “하영아 너한테만 자랑하자 나 전액 장학금 받았다.” 그리고 난 늘 반 농담 반 진담으로 성현이에게 기억력이 왜 그렇게 나쁘냐고 자주 놀렸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 성현이가 정말 많은 것을 기억하는 것이였다. 그게 너무 신기해서 성현이를 마구 칭찬해줬다, “야, 너 진짜 기억력 좋아진거 같아!” 그랬더니 성현이는 웃으며 자기 핸드폰을 꺼냈다. 뭘 보여주나 싶었더니, 성현이는 핸드폰에 저장된 폴더 하나를 보여주는 것이다. 폴더 이름은 “김하영.” 너무 웃었다. 사실 어이없었다. 거기에다 나와 한 약속들 잊지 않으려고 다 적어 놓은것이였다. “농구시합 내기, 아웃백, 기타, 신중도 옥상 카페.” 등등. 이게 뭐냐고, 이렇게 말고 제발 머리로 기억하라고 내가 뭐라고 했지만, 사실 감동이라고 해야하나? 고마웠다. 성현이가 문자 늦게 보내거나 아예 답장 하지 않을때도 내가 뭐라 막 했는데ㅜ 성현이가 어느 때부터 답장도 잘하는것이였다. 그래서 내가 또 칭찬해줬더니 나에게 그랬다, “사실 나 노력 많이 하고 있어.” 참. . . 내가 기억 좀 하라고, 문자 답장 좀 하라고 했을때 성현이는 그런 것들. . . 흘려 듣지 않고 고칠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성현이는 진정한 사과가 무엇인지 아는 사람이다. 성현이의 사과는 진심임을 항상 느낄 수 있어서 바로 받아줄 수 있었다. 한번은 나에게 사과를 하면서 “그럼 앞으로 내가 어떻게 하면 좋겠어”라고 물었다. 자기가 잘못한 부분이 있다면 빨리 인정하고 고치기 원했다. 그래서 나는 성현이한테 돌려 얘기하는 걸 싫어했다. 나한테도 항상 솔직하게 얘기해주듯이, 성현이는 나도 자기에게 솔직하게 말하기를 바랐다. 우린 정말 서로에게 솔직했다. 그런 성현이의 성격 때문에 내가 더 편하게 성현이에게 속상한 것이 있으면 바로 삼키지 않고 말할 수 있었다. 성현이는 절대 아는 척 이해한 척을 하지 않았다. 내가 한번 성현이한테 화났을때 그것을 성현이에게 얘기 했는데, 성현이는 나에게 이해를 못했다고 다시 설명해달라고 했다. “알아야 풀지…” 그리고 나의 고민이나 힘든 얘기를 들어줄때 내가 “너 나 이해해? 이해 안되지?”라고 물으면 이해 안될때는 그냥 솔직하게, “응 잘 이해안되…”라고 대답하곤 했다. 난 오히려 그런 성현이가 더 좋았고 고마웠다, 이해하는 척 안하고 대충 넘어가지도 않아서.

성현이는 모든 사람을 반가워 했다. 누구와 경계선을 긋고, 싫어하고 그러지 않았다. 채플 들을때 성현이는 한번 뜬금없이 나에게 “하영아, 넌 어떻게 그렇게 착해?”라고 물어 날 당황시켰다. 난 착하지 않다고 말해주며, 내 과거에 모습을 성현이한테 말해줬다ㅎ, 난 정말 착한 사람이 아니라 변화된 사람이라고. 자기는 고등학교 때부터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서 고민했다고 말해줬다. 주희언니도 너무 착하다고 말했다. 그날 몇시간 뒤 성현이한테서 문자가 왔다. 주희언니가 착한 이우를 알겠다며 포도나무가지 말씀 구절을 내게 보냈다. 그 구절이 사실 주희언니의 약속의 말씀인데. 성현이는 그렇게 고민을 하면서도 정말 착한 아이였다. 늘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어했는데, 정말 내가 아는 제일 따뜻한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리고 인터코레 JOY 팀을 같이 하며 매주 삶과 기도제목을 나눌때 성현이는 친구에 대한 기도제목을 많이 나눴다. 동웅이라는 친구 이름이 기억에 남는다, 그 친구를 위해 매주 기도 부탁을 해서. 친구를 위해 기도하고, 걱정하고 챙기는 성현이.

난 성현이를 안 동안 성현이가 화낸 모습을 본 적이 없다. 그리고 나에게 절대로 화 안내겠다고 약속했다. 넌 이제 큰일났다, 왜 그런 약속을 하냐 후회하게 만들거라고 난 놀렸지만 성현이는 굳게 아니라고 화 안낼거라고 말했다. 약 올릴려고 옆에서 더 괴롭힐 때도 있었는데, 정말이지 성현이는 나한테 한번도 화내거나 짜증낸적이 없다.

성현이는 사람의 말과 행동이 일치해야 한다는 것을 믿는 사람이였다. 그래서 철학 수업 들을때 왜 철학자들이 말한대로 살지 않았냐고 궁금해서 교수님한테 묻고, 답이 시원치 않아서 계속 따졌더니 자기 말로 교수님한테 찍혔다고 했다. 성현이는 그래서 철학이 싫다고 했다. 성현이는 하나님과 성경을 계속해서 우선순위에 놓을려고 노력했다. 자기가 믿는 것은 실행할려 했다. 그래서 수요예배에 빠지지 않겠다고 하나님과 약속하고 아무리 바빠도 그것을 지키고, 공부를 해도 계속해서 말씀 먼저 읽으려고 노력했다.

성현이는 진심이 묻어나는 사람이다. 난 그래서 성현이와 더 쉽게 친해질 수 있었고, 더 신뢰가 갔고, 많은 것들을 성현이와 나눌 수 있었다. 성현이와의 대화들은 항상 즐거웠다. 나에게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봐주는 친구였고, 내가 무슨 질문을하면 늘 나에게도 “너는?”하며 되물어봐주는 친구였다.

성현이는 즉흥적인 아이였다. 난 그래서 성현이를 참 단순하다고 생각했는데.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바로바로 했고, 그러지 못하는 날 보고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는 성현이를 보고 난 부러워하기도 하고 어쩜 저렇게 단순할까 생각도 했는데. 그래서 성현이는 UDTS를 1학년1학기 마치고 바로 받았고, 모아둔 새벳돈으로 꼭 한번 타고 싶었던 Mercy Ship도 아프리카에 가서 타고, 돌아와서 혼자서 한국을 여행하고, 랩에서 바로 들어가고, 젬베도 배우고 싶다더니 얼마안되 구입해서 배우기 시작하고, 단임 목사님이 존경스럽다며 무작정 찾아가 자길 가르쳐 달라고 하고, 머리도 바꾸고 싶을때 건호오빠와 같이 매번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 성현이는 하고 싶은게 많은 친구였지만, 사실 후회는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 순간에 하고 싶은 것들을 바로바로 해서. 내가 본 성현이는 이런 사람이다. 나에게 나랑 있을때 편하다고, 꾸미지 않아서 좋다고 말했다. 정말 꾸미지 않은 성현이의 모습은 그냥 아름다웠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이런 사람이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사람을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가족을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가족 얘기 할때 가장 행복한 얼굴이였다.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이였다. 사실 성현이에 대해 얘기 하자면 며칠 밤을 새도 모자랄거다.

이러한 성현이의 모습들을 나는 가슴속 깊이 간직할거다. 너무나 멋진 사람, 나도 성현이 자랑 좀 하고 싶다. 내가 본 모습들만 해도 이 정돈데, 다른 사람들이 본 모습들은 얼마나 더 많을까. 멋있다, 김성현. 내가 많이 의지했던 YWAM08동기, 내가 많이 사랑했던 친구를 잃었다. 아니, 하나님 곁으로 먼저 보냈다. 빈자리가 너무 크지만, 성현이가 그토록 사랑하던 하나님 곁에 있으니 나는 원망할 자격이 없다. 사실 내가 아는 성현이는 자기가 아닌 다른 자매나 형제가 먼저 구조되지 않았거나, 하나님 곁으로 갔다면 못 견뎠을거다. 차라리 자기였으면 생각했을거 같다. 성현이는 그런 사람이였으니깐. 복된 삶을 살았다. 40, 50이 되도 이 많은 것들을 배우지 못하고 이런 성품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수도록 한데, 성현이는 20살에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통로였고 하나님의 사랑이 되어주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너무나도 그리울뿐. 보고싶다, 김성현 이밥팅아. 곧 보자. 꼭 마중나와줘.

두둥

사실 9월에 바로 해외/중동으로 나가는게 꿈과 같은 일이겠지만,,

두려움과 책임감이 둘 다 앞선다. 준비되지 않았다는 두려움과 더 이상 부모님께 의지않고 내 힘으로 가고 싶은 마음.

가을 4개월 동안 다른 경험도 하고, 공부도 하고 (아랍어, GRE, 한국어/영어 통번역자격증), 돈도 벌고, 기도도 하고, 쉬는 시간을 갖는것도 나쁘지 않을거 같다.

이제부터 부모님보다 하나님을 더 많이 그리고 더 먼저 의지하고 싶다. 주님과 함께라면 그 어떤 모험도 안전하다는걸 몸소 체험해 보고 싶다.

조금씩  더 구체적인 비전을 발견하고, 그려보고 싶다.

what was my heart made for?

when does it break?

when does it accelerate?

what makes it move?

I want to do that which is good for my soul, not my body.

그래서 이번 여름에도 열심히 기도해봐야겠다.

어떤 방향이 제일 좋을지… 어떤 길을 예비하고 계신지 너무나도 궁금하고 떨린다. :)

지금까지 더 구체화 되는 내 꿈/비전의 과정을 생각해 보면 그 또한 신기할 따름이다.

하나님의 인도하심, 날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할때 마다 난 너무 행복하다.

고등학생일때 그저 막연히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마음에 별 재능없는 나는 국제관계란 전공을 택했다 – 국제무대에 서고 싶었기 때문에. 그리고 YWAM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을 위해 아파하시듯이 내 마음도 아프다는 것을 더 깊이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미국으로 교환학생 가, 더 다양한 전공 수업들을 들으면서 전쟁으로 분열이 생긴 사람들 사이/곳들과 피난민에 대한 마음이 커갔다. 특히 중동지역…

현장에 가서 부딪치면서, 살로 느끼면서 더 알고 싶다. 그 곳에서 마음 아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들이 뭔지…

그래서 내가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대학원에 가서 무엇을 더 깊이 있게 공부하면 좋을지 현지에서 느끼고 배우고 알고 싶다.

그래서 내 꿈은… UNHCR에서 한 번 일해보는것도 바람이지만,

중동에 가난하고 소외된 자들과 (난민들과) 일하고 전문성을 쌓으며 peacemaker의 역할도 하고

나~중에 – 떡국 챙겨 먹은 횟수가 좀 더 많이 늘고 머리에 새치도 보일 만큼 더 많아졌을때 –  북과 남한이 통일 되었을때 내 도움이 꼬~옥 필요해 초청되는, 내 도움이 요청되는 훗날에 그런 멋진 사람이 되어보고 싶다.

지금의 내 꿈은 이렇다.

이것이 또 어떻게 변할지 그리고 구체화 될지 아직 모르지만 생각만 해도 막 설레고 가슴벅차다.

내 상상/능력 이하로 내 자신, 또 내 아버지를 제한하지 않고 한번 해볼련다. 내 상상 이상으로 어디 한번 꿈을 펼쳐보자.

내 꿈이 거창할 수 있는 것은 그분의 능력이 커서 아닐까,,

그리고 내 꿈이 많은 것도 그분의 마음과 시야가 하도 넓어서 아닐까,,

그리고 내 꿈을 다른 어떤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은 나를 향한 그분의 사랑과 목적 아닐까,, 생각해본다.

꿈이 있어 난 행복하다.